본문 바로가기

가족일상

매생이2. 1월

1월. 일월.一月.日月.첫달.한해의시작.겨울의한가운데.춥다.눈.새해.신정.꽉찬40.불혹.不惑.호주오픈.남반구.여름.상상안됨.

1월은 새해의 시작이고, 차가운 시작을 하는 달이라는 느낌이다. 시작은 차갑지만 점점 따뜻해 지겠지. 그러다가 끝은 12월이면 다시 차가워지는군. 하지만 이것은 북반구에 있는 우리나라 기준이고, 지금 호주오픈 남자 결승을 앞둔 호주와 같이 남반구는 정반대의 한여름이다. 그곳은 더울때 시작해서 추워졌다가 더워지면서 끝이 난다. 그러고 보니, 적도지방은 덥고 덥고 덥고, 극지방은 춥고 춥고 춥구나. 같은 지구에 있어도 사는 장소마다 1월에 대한 느낌은 다를 것 같다.  

1년을 1~12월까지 12개로 나눈 것은 4계절이 반복되는 것을 정확히 3개월로 나누고 싶어서 였을까? 과거 조선, 고려, 삼국시대에도 12월로 1년을 나누었을까? 서양과의 교역이 없을때는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나누고 있었을까? 

January의 어원을 구글링해보면 아래와 같다.

January는 로마의 시작과 끝, 문의 신인 ‘야누스 Janus’ 이름에서 유래합니다. 라틴어로 ‘문(門)’을 의미하는 Janus는 앞뒤로 얼굴이 두 개 있는 신이었는데요, 하나의 얼굴은 미래를 보고 다른 하나는 과거를 볼 수 있는 신입니다. 지금도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이중적인 사람들을 흔히 야누스에 빗대어 표현하기도 합니다. 

초기 로마시대에는 그가 새벽에 천국의 문을 열어 아침을 오게 하며 황혼 무렵에는 천국의 문을 닫았다고 믿었습니다. 로마인들에게 야누스는 밤과 낮, 과거와 미래 의 문을 지키는 신으로, ‘야누스의 문’은 새로운 시간으로 들어가는 입구였습니다.  그래서 야누스를 모든 문, 입구의 신으로 숭배하였다고 합니다. 모든 것이 시작되는 1월은 로마인들에게는 야누스의 달이었던 것입니다. 
 

책의 모든 것 - 북DB

명화로 보는 달(month)의 의미와 유래‘달 month’  달 moon을 뜻하는 튜턴어 ‘maenon’과 관련된 옛 영어 ‘monath’. 그리고 옛 튜턴어 ‘maeonth’에서 유래한 ‘month’는 로마력의 열두 달을 의미합

bookdb.co.kr

야누스의 두 얼굴은 과거와 미래를 보고 있으며 둘을 관통하는 기준점이 된다. 마치 12월과 1월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는 것과 같이 분절시켜 놓았다. 하지만 시간은 연속적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오늘이 내일이고 내일이 모레가 된다. 지구가 태양을 한바퀴 돌아 반복되는 태양력을 바탕으로 매년 새로운 시작점을 과거와 분절시키는 것은 우리의 삶을 시간제한을 갖는 목표를 두게하여 생산적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양력과 음력을 과거부터 모두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반도의 우리나라에는 대륙의 큰형님이 항상 존재했으니 많은 가르침을 받았왔던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천체물리의 반복성을 지속적으로 관찰하여 정확한 주기를 확인하였던 과거의 선배 과학자들에게 무한한 존경을 표한다. 참을성 없는 나는 반성하고 미래에 나에게 반영할 것이다.

달력이란 일년 중의 시령을 날짜에 따라 기록하여 놓은 시간범주를 의미한다. 여기서 시령은 월·일·24절후·요일·행사일, 해의 출몰, 달의 영허(盈虛), 일식·월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달력은 이를 일상생활의 편이를 위하여 만든 상용력(常用曆)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세계 공통으로 쓰이는 양력과 음력도 병용되고 있다. 달력의 본질은 날짜, 즉 계절과 일시를 알려주는 데 있으므로 이것을 만드는 원리는 어떤 일정한 주기로 되풀이되는 현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달력)]
 

달력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시령은 월·일·24절후·요일·행사일, 해의 출몰, 달의 영허(盈虛), 일식·월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달력은 이를 일상생활의 편이를 위하여 만든 상용력(常用曆)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세계 공통으

encykorea.aks.ac.kr

새해에는 공자 선생님께서 논어에 미혹되지 아니하는 나이인 40대의 초입에 들어선다. 과거의 성인이 남겨두신 말씀의 의미를 되새기며 2022년 1월을 보낸다.

<논어> 위정편에는 공자가 자신의 학문 수양 과정을 회고하는 대목이 나온다. 내용은 이렇다. “나는 15세가 되어 학문에 뜻을 두었고(吾十有五而志于學), 30세에 학문의 기초를 확립했다(三十而立). 40세가 되어서는 미혹하지 않았고(四十而不惑), 50세에는 하늘의 명을 알았다(五十而知天命). 60세에는 남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였고(六十而耳順), 70세에 이르러서는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법도를 어기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세계 4대 성인으로 불리는 공자의 배움이 나이가 들수록 어떻게 익어갔는지를 보여주는 내용이다. 공자가 말하는 배움(學)은 단지 지식의 습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의 배움에는 그 배움을 몸소 실천하는 행(行)이 함께 담겨 있다. 진정한 학문은 지행합일(知行合一)인 것이다.

공자가 나이 마흔에 이르러 몸소 체득했다는 불혹(不惑)은 세상일에 현혹되어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가게 됐다는 의미다.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不惑(불혹) | 생글생글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不惑(불혹) , 신동열

sgsg.hankyung.com